과거의 책은 어떻게 생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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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은 무엇일까요?

누구나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질문입니다. 도서관(圖書館)이란 말은 책을 모아둔 건물이란 뜻입니다.

그럼 책과 건물 중에서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아마 모든 사람이 책이 더 중요하다고 답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도서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책입니다.

현대와 같은 디지털환경에서도 책은 사람에게 가장 유익하고, 유용하고, 간편하고…… 아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책은 현대사회에서도 모든 정보자료의 요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책은 언제부터 사용되었고 과거의 책은 어떤 모습일지, 어떤 방법으로 지식정보를 저장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수메르 설형문자와 점토판(BC 4000년)

수메르인은 비옥한 토지에서 수확한 곡물 등을 관리하기 위해 설형문자를 사용했습니다. 뽀족한 도구를 이용해 간략하게 각사하는 방식으로 여러 모양을 기호화하고 점토에 새겼습니다.

출처 : 미술대사전

고대중국의 갑골문(BC 2000년경)

소뼈와 거북이 등껍질을 활용했으며 제사, 정벌, 등 주요 국사에 대한 신의(神意)를 묻는 점(占)을 통해 결정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 갑골문자입니다. 황하 문명에서 등장한 갑골문자는 한자의 원형으로 현재까지 사용하는 문자이기도 합니다.

출처 :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국립민속박물관(http://www.emuseum.go.kr))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종이의 어원, 파피루스(BC 3500년경)

이집트 나일강의 습지에서 자라는 2M가 넘는 긴 갈대를 엮어 문자를 쓸 수 있는 종이를 만들었습니다. 점토판이나 나무판보다 훨씬 가볍고 실용적인 파피루스는 지중해를 통해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습니다. 파피루스는 종이(paper, 독일어 Papie)의 어원입니다. 성경(bible) 및 도서관(독일어 Bibliothek)의 어원도 파피루스입니다.

출처 : 이혁종에 의해 창작된 이혁종03_영국_런던00490+https://gongu.copyright.or.kr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소아시아 페르가몬 양피지(BC 150년경)

BC 150년경 세계 최대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꿈꾸던 프톨레미 5세는 페르가몬 왕립도서관이 더 융성해지는 것을 우려해 페르가몬에 대한 파피루스 수출을 금지합니다. 이에 페르가몬 왕국의 에우메네스 2세는 대체 매체로 양, 염소, 송아지 등의 가죽을 이용하여 양피지를 개발합니다. 양피지는 한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수십마리의 짐승 가죽이 필요했습니다. 물량 공급이 부족하고 파피루스보다 고가였기 때문에 대중화가 느리게 진행되었지만 파피루스보다 내구성과 보존성이 좋아 오랜 세월동안 이용되었습니다.

출처 : https://www.freepik.com/free-photo/scroll-near-parchment_2014686.htm#page=1&query=parchment+paper&position=21

죽간과 목독

죽간은 대나무를 일정 간격으로 쪼개어 묶은 것으로 장문을 묵서하기 어렵고 유지 관리도 쉽지 않기 때문에 여러 개 죽편을 가죽끈으로 묶었습니다. 한자 冊(책)도 죽간의 한 부분을 그린 상형문자입니다.

목독은 나무를 30cm 정도로 다듬은 목편을 말합니다. 죽간과 목독은 대개 관청 문서나 일반 서신용으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종이가 아닌 죽간을 불태운 것입니다.

출처 :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국립고궁박물관(https://www.gogung.go.kr/))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출처 :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http://www.museum.go.kr/))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채륜이 인류에게 준 선물 종이(105년)

인류 최초의 종이는 105년 채륜에 의해 개발되었습니다. 그는 수피, 마, 무명조각, 어망 등을 혼합하여 종이를 만들었으며 3~4세기경 죽간목독을 대체하고 5~6세기경 범용화되었습니다. 우라나라에는 고구려 소수림왕(372년) 때 불교와 함께 제지법이 도입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며 고구려 영양왕 때 승려 담징에 의해 일본에 전파되었습니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1240년대)

고려가 세계에서 가장 처음 금속활자를 만들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직지심체요절’은 현재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직지는 1377년에 인쇄되었고, 1455년에 인쇄된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무려 80년이나 앞선 귀중한 자료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금속활자 발명은 직지보다 훨씬 앞서서, 기록으로만 그 존재가 알려진 [고금상정예문]이라는 책은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이상 앞서 있습니다.

출처 :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http://www.museum.go.kr/))의 공공저작물을 이용하였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혁명(1440년대)

서양에서 최초로 활판인쇄술을 개발한 구텐베르크는 금속활자를 이용해 처음으로 ‘42행 성서’를 인쇄하였습니다. “금속활자는 한국이 세계 최초로 발명하고 사용했지만, 인류 문화사에 영향력을 미친 것은 독일의 금속활자이다.” 이 말은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고어(Gore)가 1997년 베를린에서 열린 G7 회담서 말한 내용입니다. 이처럼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술은 세계 최고는 아니지만 인류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입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산업혁명 = 출판혁명(1810년대)

구텐베르크 인쇄술 이후 인쇄기는 350년 동안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산업혁명 때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영국의 스탠호프는 1811년 외연기관을 사용한 최초의 철제 인쇄기를 방명합니다. 산업혁명을 통해 개발된 인쇄기는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인쇄물의 생산량을 늘릴 수 있었습니다. 기계식 인쇄기의 확산을 통해 더 빠르고 더 저렴하게 많은 양의 책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글 | 안심도서관 사서 전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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